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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太極旗)는 대한민국국가 상징기다. 하얀 배경에 중앙에는 파란색과 빨간색의 태극이, 네 귀퉁이에는 검은색의 사괘[1]가 그려져 있다.

taegeukgi.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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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역사
2. 국기 게양
3. 국기 관리
4. 국기에 대한 경례
5. 도안법
6.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태극기 변천
7. 그 밖의 이야기들


1. 역사

taegeukgi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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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강화도 조약의 계기가 된 운요호 사건 자체가 일본 국기 문제가 크게 제기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계속해서 국기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882년 만들어졌다.

제작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박영효가 1882년 만들었다는 설이 기존의 설이었으나, 2011년 현재 국사학계에서 김홍집의 명을 받은 '이응준'이 만들었다는 설이 현재 가장 유력한 통설이다. 자세한 내막은 임오군란 이후 청은 기존의 전통적인 조공책봉체제속 번속국(제후국)이었던 조선을 근대적 의미의 속국으로 만들고자했다. 여기서 절대 '원래부터' 조선이 속국이었다 던가 조공관계가 식민지와 같다거나 하는 오해는 금물. 이 속국화 역시 청의 개혁파가 전통적인 관계를 버리고 서구의 식민지 개념과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주변 조공국들과의 관계를 왜곡한 것으로 일종의 억지라 할 수 있다. 서구열강에 침략에 맞서 청나라는 변방인 번국에 대해 '근대식'으로 장악하려했던 것. 이것은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청프전쟁이 일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타파하겠다고 나섰던 것이 갑신정변이었지만 실패한 이후, 청일전쟁으로 청이 조선에서 손을 뗀 이후에 독립문이 세워진 것 또한 '속국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조선인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정식으로 '속국'이 된 적은 하단에 나와있듯이 없다. 다만 그런 팩트가 중요한게 아니라 청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관계도 썩 좋지 않았고 감정히 굉장히 안 좋게 박혀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시달리게 한 외세'라는 인식으로 독립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청나라가 명나라에 이어지는 중국이라는 역사관도 현대의 관점이고 청은 식민지와는 성격이 다르더라도 원래부터 서구 열강과 다름없는 외세로 받아들여져 있었다. 한편 이러한 관계 때문에 조선은 청의 속국 대접을 받고 있는데(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서 규정) 서양은 조선과 청에 모두 대등 관계를 맺고 있어 이 이중 관계로 인한 외교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임오군란 이후 흥선 대원군이 되돌린 관제를 다시 고치는 과정에서 조선 정부 조직까지 청의 입김 아래 뜯어고쳐지고 고문이 수십 명 파견될 정도였으니 주권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20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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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깃발 황룡기 중에서 삼각기[2]. 정식명칭은 황저남용창적주(黄底蓝龙抢赤珠)

청나라는 당시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삼각형의 황룡기를 변형하여 속국의 모습을 보일 것을 제안하였는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색을 청색으로 바꾸라는 등, 즉 청룡기를 쓰라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동양의 방위적 관점에서 황색은 중앙을 의미하고 청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또한 청룡은 동쪽을 관장하는 사신무로써 이 황룡기를 사용하고 우리나라가 이를 변형한 청룡기를 사용하라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알 만 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용은 격식이 낮게 표현하여 발톱이 하나 적게 하도록 하였다. 때문에 고종은 절대 못받아들인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었다. 다만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위해서라기보다, 청나라를 중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부한 것.[3] 1882년 4월 6일 부터 조선 측의 김홍집과 청나라 측의 마건충이 국기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최초의 태극기인 이응준 태극기.[4]
그러던 중 1882년 5월 조미 통상조약 당시,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달라는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의 요청을 받은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하였다. 이게 최초의[http]사용례이다. 이게 속칭 이응준 태극기로 2004년 미국 해군부 해상국의 자료에서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
실제로 고종은 이 단계에서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기로 마음을 거의 굳힌 단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응준 태극기의 사용은 최초의 공식적 사용이라는 의의가 있지만 정부의 공인이 있지 않은 약식에 가까웠다. 이에 대해서 중국인 고문으로 당시 조선에 파견중이던 마젠창[5]은 일본 국기와 혼돈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태극 팔괘도를 건의했다. 그냥 조선 왕조 어기를 국기로 쓰자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만, 이 것은 태극 팔괘도가 언급된 최초의 경우이다.

박영효 태극기
그리고 박영효가 일본 기선 메이지마루 호를 타고 수신사로 일본으로 건너가던 와중에 정식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 때 메이지마루호의 선장인 영국인 제임스 역시 8괘는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대각선의 4괘만 남기는 것을 건의하였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서는 고종이 태극 팔괘도 대신 태극기의 원안을 고수하라고 박영효에게 명령을 내렸고, 이를 배 내부에서 서양인들과 논의하는 것을 통해서 신뢰성을 강화한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하지만, 그 4괘 역시 이를 본 일본 신문에 실린 그림과 박영효가 귀국후 고종에게 올린 서한의 내용이 다른 등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1883년 1월에 공포했다.

독립문 태극기
이 시기 확정된 태극기의 모양은 독립문에 새겨져 있으며, 이를 속칭 독립문 태극기라고 부른다. 이 독립문 태극기는 대한제국에서 국기로 쓰였으나,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어서 3.1 운동 때 휘날렸다. 일제는 태극기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보아 제조·소지를 금지하는 억압을 가했고, 그 결과 소용돌이치는 중앙의 태극과 대각선의 팔괘라는 기본 개념 외에는 고정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3.1운동 시기 들고 나온 태극기의 도안도, 의병전쟁시기 사용된 태극기의 도안도, 임시정부가 사용한 태극기의 도안도 모두 달랐다.
따라서 광복 무렵에 나온 태극기는 이후 태극이 좌우에 놓이거나 사괘 대신 팔괘가 그려지거나, 심지어 태극을 가운데에 두고 1괘를 가운데에 주욱 그은 약식 태극기까지 그려지는 등 형태가 각양각색이었다. 결국 광복 이후 국기를 정하면서 태극기의 모습을 확정할 필요가 있어서 여러 유력 인사들을 불러서 토론을 거치게 된다. 사실 광복과 함께, 이 참에 새로 국기를 만들자는 주장을 한 인사도 있었으나 사상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바로 배척되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지지를 얻어서 확정된 것은 당시 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망라되어 있었던 '우리국기 보양회' 제안의 태극기였다. 그런데 독립문에서 발견된 태극기의 모습이 전해지면서 갑론을박 끝에 다시 태극기는 독립문으로 번복되어서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립문안의 태극기에서 4괘가 역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6]이 나오면서 다시 우리국기 보양회 안으로 변경되어 결국 확정되었다. [http]태극기의 변천 단계


여담으로 실존하는 실물태극기중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1883년 푸트 미국공사의 수행원이었던 쥬이가 1884년 입수해서 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이른바 '쥬이 태극기'라고 부른다. 스미소니언 역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상단 이미지에서는 붉은색이 아래로 내려가 있는 형태로 되어있는데, 상하를 바꾸면 이응준 태극기와 유사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국내에서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실물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이른바 '대니 태극기'이다. 대한제국 시기 미국인 고문이었던 대니에게 고종 광무황제가 1890년 수여한 태극기 이다. 1881년 데니의 외손자인 윌리엄 롤스턴 1세가 태극기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7] 당시 정부가 환수에 나섰다. 롤스턴 2세[8] 부부가 한국에 방문해서 태극기를 기증하면서,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한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쥬이 태극기와는 달리 국내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데니 태극기를 은근히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발견 당시에 현존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져서 그런 것도 있고.

2. 국기 게양

현재 대한민국 법에서는 3월 1일(삼일절), 6월 6일(현충일), 7월 17일(제헌절), 8월 15일(광복절), 10월 1일(국군의 날), 10월 3일(개천절), 10월 9일(한글날), 그 외에 국가장 기간이나 기타 정부 지정일 등에 게양하도록 되어 있다. 단 현충일과 국가장 기간에는 태극기 하나가 들어갈 공간만큼을 내려다는 조기를 게양하도록 되어있다.

제헌절, 국군의 날 등이 쉬지 않는 날이라고 게양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국경일과 국가 기념일에는 다 뜻이 있으니, 그 뜻을 기리면서 게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80년대 5공화국 시절까지만 해도 오후 5시가 되면 도심이나 농촌을 가릴 것없이 관공서 등에서 국기를 내리게 될 때 1분간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길가던 시민들이나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움직이지 않은 채로 가슴에 손을 얹게 되는 중간 의식이 있었다. 이후에는 폐지되어서 현재는 이런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 시민의식이 현대화되면서 전체주의적인 행동이라는 시각이 강해짐에 따라서 그렇게 된 것. 비슷한 사례로 국민의례도 있다.

과거에는 태극기에 물 한 방울, 티끌 한 점 묻히지 못하도록 우천 시 게양을 금지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관련법이 개정되어 달고 싶으면 1년 365일 게양할 수 있다.[9] 다만 이러한 경우 관공서는 야간에 적절한 조명을 켜야 하며 학교와 군부대는 매일 국기 게양과 하강을 해야 한다.

[http]행정자치부 홈페이지에 자세한 규정이 나와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아파트 고층의 경우에는 국기게양에 많이 유의해야한다. 가끔 강풍에 날려서 발코니 난간에 깃봉을 꽂아 게양한 태극기가 깃봉 채로 빠져 떨어져 주차창의 차량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라 가벼워도 고층에서 떨어지면 차 유리창에 금 정도는 가게 할수 있다.

3. 국기 관리

형법 제105조는 국기·국장모독죄(國旗國章冒瀆罪)라 하여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제거 또는 오욕하는 행위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국기 관리를 엄격히 해 국기가 더러워진 경우 빨지 않고 소각해야 한다는 등의 관습이 생겨나기도 했다(그 이면에는 그 당시 섬유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빨면 색이 바랜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올이 풀리지 않을 정도에서 세탁도 가능하니 되도록 소각은 자제하자. 국기에 대한 경례가 생겨난 것도 이 때.

4. 국기에 대한 경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가장 처음 하는 일이 모든 참석자가 태극기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이다. 애국가 제창은 생략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생략하는 일[10]은 거의 없다. 국기에 대한 경례시, 태극기를 직접 바라보고 있어야 하며, 일반 국민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위에 얹고, 군인이나 경찰관은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해야 하며,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아야 한다. 총을 들고 있을때는 집총경례인 받들어 총을 해야 하며, 역시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아야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가장 최근 개정된 시기는 2007년 7월 27일이다.

  • 변경 전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변경 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스런' 이라는 표현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틀린 표현이기 때문에 올바른 ㅂ 불규칙[11] 활용형 표준어인 '~스러운'으로 개정하였으며, 좀 더 현실적인 내용으로 내용의 일부를 개정하였다. "몸과 마음을 충성을 다한다"라는 내용이 제국주의,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으며, 결국엔 수정되었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새로 만들어서,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정의롭지 않다면[12] 충성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올바른 민주주의적인 사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자유민주주의의 최선봉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상기한 충성의 맹세를 통해 국기와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 여전히 행해지긴 하지만 미국은 의외로 굉장히 앞뒤가 안맞는 나라라서(...) 국가주의적인 사상이 강한 나라다. 일단 판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자에 대한 학교 등의 징계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진보 정당들[13]을 비롯해 진보, 노동단체 대부분은 각종 행사 때 국민의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을 일체 거부하고, 대신 '민중의례'라 하여 노동 열사에 대한 추모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대체하고 있다. 다른 단체들은 몰라도 국회에 등원하는 공식 정당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종종 내외적으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요즘은 당내 행사에서만 그렇고, 외부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는 굳이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듯 하다.


5. 도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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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과 사괘가 그려진 이 도안은 동양에서 우주의 원리라고 주장해 온 , 하늘을 상징한다.

세계에 몇 안 되는 우주의 원리를 담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는 국기[14]. 흰색,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이 들어간 국기에 깃발의 봉의 노란색까지 넣어 오방색이 모두 들어갔다고도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원래 우리 민족의 태극인 삼색태극(태극부채나 북에 그려진 것처럼 빨강, 파랑, 노랑 3색으로 된 태극]을 써야 오방색이 모두 갖춰지는데 노랑이 태극에서 빠진 바람에 우리나라의 국운이 쇠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태극기가 빨강, 파랑 2색 태극만 쓴것 때문에 그 모양대로 남북이 분단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6.25 전쟁 무렵에 꽤 널리 퍼지기도 했고, 반 농담조로 4괘가 주변 4대 강국(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뜻한다는 얘기도 있다.

도안이 비교적 복잡한 관계로 외국인에게 그리기 몹시 어려운 국기로 꼽힌다. 그래도 샤하다가 쓰여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나 부탄(), 멕시코 국기(독수리을 물고 날아가는 모습), 과테말라 국기(과테말라의 국조(國鳥)로 지정된 새인 케찰(케트살)[15] 및 과테말라 독립 문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기(설명이 힘든 기하학적 문양), "벨라루스" 국기 등 '그림 그리기'류 국기에 견주면 양반이다.

그리기 어렵긴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태극 문양이 주는 동양적 이미지가 꽤 인상적이라고 한다.

태극과 건곤감리가 들어간 지극히 도교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중국에서는 태극기를 보고 한국인의 조상들 중에서 도사가 많았거나, 혹은 조선이나 대한민국 자체가 도사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었나 생각하면서 말이 통하는 한국인에게 이걸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실화다.(...)

한국인 중에도 사괘를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데 되도록이면 괘의 순서 정도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3   5
 태극 
4   6

소문자 n을 쓰는 순서로 줄 수가 늘어난다고 외워도 좋다. 물론 괘의 순서만 맞게 그린다고 태극기를 제대로 그렸다고 볼 수는 없고, 태극과 각 괘의 모양, 위치, 크기 등이 전부 세밀한 규격이 있다.

태극의 위아래 색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정말 단순하지만 쉽게 외우는 방법으로, 아래는 바다, 위는 태양이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헷갈릴 일은 없다. 아니면 위는 북한, 아래는 남한으로.... 위는 빨갱이, 아래는 파랭이

태극 속 물결무늬의 방향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군사분계선을 떠올리면 쉽다. 왼쪽은 아래로 치우치고, 오른쪽은 위로 치우치고...읽으면 읽을수록 태극=남북한 사괘=주변국 드립의 설득력이 강해진다(......) 아니면 애국가를 떠올려라. 동해물과 백두산이~ 순서대로 왼쪽은 아래 (동해) 오른쪽은 위 (백두산)

6.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태극기 변천


광복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까지의 태극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1949년까지의 태극기.


1949년~1997년까지 사용된 태극기. 4괘의 배치가 달라졌다.


현재의 태극기. 태극의 색이 달라졌다.

7. 그 밖의 이야기들

태극기를 항시 게시해도 된다는 법 개정과 더불어, 2002년의 월드컵을 기점으로 태극기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는 등 이전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태극기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국기법 위반이나 아니냐로 논란이 있는 편. 원칙상으로 태극기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행위는 법률로 금지돼있다. 또한 태극기 응원이 범람하다보니 응원이 끝난 후 수많은 태극기가 길바닥에 버려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런 응원도구들은 가급적 집에 가져가서 조용히 처리할 것을 권한다(…).그래도 거대 국기 응원 완벽하게 할수 있는나라는 거의 없다.

또한 폭주족들이 삼일절, 광복절 등에 오토바이에 태극기를 달고 질주하는 비뚤어진 애국심경찰 분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한다. 아니, 이건 이미 애국심이라기 보다는 자기들의 범법 행위를 태극기를 이용하여 애국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행위다.
2008년 이후 북악산길을 태극기를 달고 자전거로 질주하는 행위는 금지! 아마도 시야 방해와 국기 훼손 떄문인듯하다.




1997년에는 태극기를 주제공익광고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 전통화가가 붓으로 그린 듯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잘 보면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맞추고, 축구 경기에서 축구선수들 역시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주고 받으며 골문을 뚫는데 성공하여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펄럭이는 태극기와 한반도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어떤 남성이 국민의례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공익광고협의회의 상징인 특유의 BGM과 해골마크도 빠지지 않는다

1997년 당시에 박찬호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있었던데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좋은 행보로 승승장구 하며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본격적인 틀을 갖추었을 정도로 스포츠 경기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이 많던 시절이었다. 해방 이후 국내 시위 등에서 공식적으로 태극기가 불태워진 적은 없으나, 한때 통일이 되면 예멘이 통일 후 새 국기를 제정했던 것처럼 태극기가 아닌 국기(ex. 한반도기)를 써야 하나에 대한 주제가 나온 적이 있는데, 태극기는 분단 이전부터 사용되었기에~ 독일이 통일하고도 국기를 안 바꾼 것[16]처럼 이대로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Upload new Attachment "taegeukgi3.jpg원본" on the "UploadFile"
2004년에 조선일보가 가장 오래된 태극기를 공개했다. [http]한국어 판,[http]영어판(두번째 부분), [http]일본어 판(아쉽게도 비밀번호가 걸려있다), [http]비교사진 [http]한국의 비교사진
참고로 위 사진 중 두번째 사진을 토대로 대청국고려국기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오해다. 1874년 통상장정에 나왔다는 것은 오류고 1883년작 이홍장의 개인저서 통상장정성안휘편(通商章程成案彙編)에 수록된 것으로 한마디로 혼자 낙서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조선을 청으로부터 독립 시켜준 것이라는 주장을 위해 퍼진것이다. 19세기 말 당시 청나라의 통교방식을 보면 조선이 속국의 위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국이나 베트남에는 속국 방식으로 통교했지만 조선은 국가대 국가인 외교 방식을 취했다. 개혁과정에서 근대 제국주의식 속국화를 추진했다고 해도 결국 정식으로 속국이 된 적은 없다. 물론 청나라 속국 떡밥에서 함께 거론되는 명나라와의 관계도 속국이 아닌 관계였으며 애초에 속국이라는 개념이 제국주의시대를 맞아 근대에 와서 생겨난 개념이므로 개소리다.
외국에서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대팀 관중이 태극기를 들기도 한다. 유로 2004의 조별리그에서는 덴마크 관중이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그 경기에서는 무득점 무승부로 끝났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조별리그에서도 뉴질랜드 관중이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그 경기 또한 1대1 무승부를 거뒀다.
잘못해서 ''라고 쓰는 일이 없도록 하자.[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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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 ☲). 팔괘 중 상하대칭인 괘들.
  • [2] 청나라 항목을 보면 사각깃발도 있는데, 이것은 대룡기라고 부른다.
  • [3] 당시까지도, 아니 일제강점기가 되어서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숭정제의 연호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 [4] 괘의 위치가 이상하지만 지금도 흔히하는 외국인의 실수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실은 맞지만 깃대가 잘못일 가능성도 있다. 국기에서 '앞면'의 개념 때문이다. 앞면과 뒷면은 거울상이며 보통은 깃대 방향이 왼쪽을 앞면으로 보지만 과거의 동아시아에서는 깃대 방향이 오른쪽을 앞면으로 보았다. 그러니 앞면인데 깃대 매달린 방향을 잘못 그렸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 [5] 마젠창도 그렇고 묄렌도르프 등도 그렇고 청의 고문들은 초반에는 청의 의도를 따르는듯 하다가 결국 조선에게 유리한 제한을 하다 못해서 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향까지 보였기 때문에 청은 이 고문들을 모조리 소환해버렸다. 후일 일본이 보낸 고문인 미국인 샤를 르 장드르도 원래 일본의 대만 점령을 돕는 등 친일파였다가 조선에서 지내면서 조선을 돕고 일본에 반대하는 정책을 펴는 등 조선에 동화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서양인이 일본에 동화된 경우도 있지만.
  • [6] 그런데 지금은 현행 태극기 역시 기존의 순행 태극이 팔괘가 아니라는 이유로 역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7] 데니의 행적과 유물들을 다루면서 데니 태극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일 것이다 라고 적은 김원모 교수의 논문을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임종건(이후 한남대교수, 서울경제신문사장 역임)이 읽고 미국 현지 취재를 하면서 알려졌다. 조병우 지국장과 임종건 기자는 이걸로 특종상을 탔다.
  • [8] 윌리엄 롤스턴 1세는 당시 나이가 80세였다.
  • [9] 비나 눈 등은 상관이 없으나, 국기가 찢어질 염려가 있을 정도로 심한 악천후인 경우엔 지금도 게양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 [10] 수정전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혼동되어 적혀있었으나, 국기에 대한 경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예를 들자면, 국장이나 추모식 같이 엄숙함을 유지해야 하는 행사의 경우 국기에 대한 맹세나 애국가 제창이 아예 없고 대신 국기에 대한 경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혹은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다.
  • [11] 아름답다 → 아름다운, 어둡다 → 어두운, 선생답게 행동해라 → 선생다운 행동 등, 어간에 ㅂ받침이 있는 경우 활용시 'ㅂ'이 탈락하며 'ㅜ'가 따라오는 현상
  • [12] 단적인 예로 군사독재정부나 불법적인 쿠데타
  • [13] 2013년 초 현재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 [14] 태극 문양의 경우 몽골의 소욤보 문장, 티벳(아직 정식 국가는 아니지만) 국기에도 사용되고 있다.
  • [15] 과테말라의 화폐 이름이기도 하다.
  • [16] 단, 독일은 동독이 멸망하여 서독으로 흡수된 형태이며, 서독 정권과 역사, 국기를 계승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붕괴되어 대한민국으로 합병된다면 몰라도(물론 현재로선 이쪽이 가능성이 높지만) 같은 위치에서 통일하는 상황이 된다면 독일은 예시로써 조금 부적합하다.
  • [17] 실제로 모 정치인이 이 오타를 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http]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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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8 18:26:27, Processing time 0.0805 sec